땅만 파도 손해라는 건설사들 재건축 사업도 시들
땅만 파도 손해라는 건설사들 재건축 사업도 시들
서울 강남역 주변 삼성 서초타운 남서쪽 서초2동에는 이른바 ‘독수리 오형제’라고 불리던 아파트 단지들이 있다.
지금은 재건축이 끝나 서초그랑자이와 래미안 리더스원, 래미안 에스티지와 래미안 에스티지S로 바뀐 지역이다.
이들 새 아파트 사이에 유일하게 공사용 펜스가 둘러쳐진 아파트가 있다. 바로 신동아 1·2차다.
2017년만 해도 주변 단지와 비슷한 속도로 사업을 진행했던 이 아파트는 주변 서이초등학교 일조권을 침해하는 문제 때문에 설계를 다시 짜게 되면서 사업이 지연됐다.
그런데 이후 7년간 사업환경이 급변했다. 당시 3.3㎡당 723만원이던 공사비를 조정해야 하는데 얼마나 뛸지 시공사인 DL이앤씨도, 조합도 말을 아끼고 있다.
공사비가 바뀌고 조합원 평형 배정을 진행하는데, 분담금이 얼마나 오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근처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소유주들이 비용이 올라간다고 인지하면서 그 폭을 몰라 불안해 한다”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주변보다 밀려 억울한데 부담도 커진 것”이라고 했다.
최근 건설현장을 덮친 ‘공사비 쇼크’는 분양가격만 급등시킨 것이 아니다.
무섭게 뛴 자재비, 노동 관련 규제로 치솟은 인건비로 사업성까지 저해할 정도가 되자 재건축·재개발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한다.
공사비를 올려 받지 못하면 손실을 보는 건설회사와 가구당 수억원의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하는 조합원 간 갈등이 첨예해졌다.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공사비를 올려도 유찰을 거듭하는 현장도 늘었다.
아파트 공급 일정이 밀리며 금융비용도 눈덩이처럼 불고, 다시 사업성이 떨어지는 악순환이다.
올해 1분기에 시공자 선정 총회를 개최한 정비사업 현장은 23곳이다.
이 중 수주 경쟁이 이뤄져 시공사를 선정한 곳은 마포 연남동 244-16번지 일원 가로주택을 포함해 3곳뿐이다.
작년 4분기에 선정 총회를 연 31곳 중 8건이 경쟁입찰이었음을 감안하면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경쟁 입찰이 이뤄지지 않는 현장은 강남권 재건축 단지도 마찬가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출혈경쟁까지 감행했던 건설사들이 공사비 부담이 커지자 수주 경쟁을 피하는 모양새다.
송파구 잠실우성4차는 공사비를 계속 올려 4차 입찰까지 진행 중이다.
조합은 1, 2차 입찰때 3.3㎡당 760만원 공사비를 제시했는데도 건설사들이 발을 빼자 810만원으로 올렸다.
그런데도 입찰확약서를 낸 건설사가 DL이앤씨 한 곳이라 3차도 유찰됐다.
가락삼익맨숀도 2번 유찰돼 결국 수의계약으로 전환됐다.
지난해 12월 1차 입찰 현장설명회에 8곳이 참여했지만 2월에 막상 입찰하니 무응찰이었다.
조합은 3.3㎡당 810만원 공사비를 제시했는데, 시공사들은 조합측이 원하는 고급 브랜드를 적용하기엔 너무 낮았다. 공사비 조정없이 진행한 2차 입찰도 결국 실패했다.
서초구 신반포27차도 3.3㎡당 공사비를 첫번째 908만원, 두번째는 958만원으로 진행했는데도 SK에코플랜트 홀로 참여해 유찰됐다.
이처럼 시공자를 잡기 위해 ‘울며겨자 먹기’식으로 공사비를 올려도 많은 조합들이 사업지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공자를 정했더라도 공사비가 또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갈등의 씨앗은 여전하다.
실제로 잠실진주는 변경된 공사비가 급등해 조합원들 불만이 터지고 있다.
치솟은 공사비 갈등에 한국부동산원에 접수된 공사비 검증 의뢰도 급증세다.
2019년 3건, 2020년 13건에 불과했던 검증 신청 건수가 2021년 22건, 2022년 32건, 2023년 30건으로 늘었다.
공사기간이 늘어지며 ‘분양 후 3년 내 입주’라는 건설업계 공식도 깨지고 있다.
지난달 분양한 경기 이천서희스타힐스스카이는 2029년 1월 입주 예정이다.
분양부터 입주까지 약 5년인 셈이다. 부동산R114가 올해 입주(예정) 아파트 대상으로 분양부터 입주까지 소요되는 기간을 조사한 결과 평균 2년 5개월(29개월) 걸리는 것으로 집계됐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4년간 평균 2년 1개월(25개월)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4개월이 더 늘었다.
건설업계에서는 앞으로 분양부터 입주까지 기간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공사기간이 늘면 조합원이 부담할 분담금이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분양가격에 다시 전가될 위험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