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동떨어진 발주금액 서울 세종 공공공사 멈춰 섰다
현실과 동떨어진 발주금액 서울 세종 공공공사 멈춰 섰다
세종시 집현동에는 서울대,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등의 공동캠퍼스 조성공사가 진행 중인데, 지난 5일부터 일주일 넘게 멈춰 서 있다. 작년 10월에 이어 두 번째다.
발주처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시공사인 대보건설의 공사비 분쟁 탓이다.
대보건설 관계자는 “공사비가 750억원인 이 현장에 300억원 이상 손해가 예상된다”며 “그동안 레미콘 공급 차질
원자재와 인건비 상승 여파로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차입까지 해가며 공사했지만 태영건설 워크아웃
이후 금융권 차입도 여의찮아 더 이상 공사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안정적이었던 관급 공사마저 치솟는 공사비에 속수무책이 됐다.
이곳 현장에서 일하던 건설사와 협력사 직원들은 지난 12일 공사 재개를 촉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서울시는 강남역·광화문·도림천을 비롯한 침수 취약지 6개 구역에 대심도 빗물 배수터널 공사를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참여 희망 업체가 안 나타나 두 차례나 유찰됐다.
공사비 급등에 예산 삭감까지 겹쳐 사업성이 떨어지면서다.
이 공사는 애초 10년간 예산 1조5000억원이 계획됐지만, 기획재정부 심사에서 1조2500억원으로 삭감됐다. 안전을 위한 기반시설마저 기약 없이 지연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조만간 공공부문 공사비 현실화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힌 만큼 관련 지침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제시될지 관심사다.
그동안 철근과 시멘트를 비롯한 자재비와 인건비가 뛰어오르고, 안전·노동 규제(중대재해처벌법 등)마저 강화하면서
시공비가 급등했지만 공공 공사 발주금액은 턱없이 낮아 기업의 참여 기피가 심각했다.
15일 대한건설협회(건협)에 따르면 2022~2023년 주요 국책사업을 포함한 대형 건설공사(토목 500억원·건축 200억원 이상) 유찰률은 68.8%를 기록했다.
남부내륙철도, 제2경춘국도(남양주~춘천), 강남역·광화문·도림천 일대 빗물 배수터널 건설이 대표적인 사례다.
건설공사비지수(2014년 100기준 수치)는 2020년 1월 118.3에서 올해 1월 154.64로 매년 약 10%씩 치솟았다.
대형 공사는 총사업비 관리 대상이어서 공사비를 산정할 때 기재부가 참여한다.
하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급등하는 공사비를 제대로 반영해주지 않으면 진행 중이던 공사는 멈춰 서고 새로 시작할 공사는 낙찰자를 찾기조차 어렵다.
건협 관계자는 “공공 건설사업의 공사비 부족이 민간 건설사에 대한 손실 전가로 이어지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현재의 경직된 공공 공사 발주·예산 시스템을 뜯어고쳐야만 근본적으로 공사비 현실화가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공공 공사비를 현실화하려면 기본 타당성조사를 할 때 산정하는 금액(예산)과 실제 계약 체결 금액 사이 차이도 보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을 지낸 이상호 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공공 공사는 턴키(설계·시공 일괄 입찰) 방식이어서 기본
타당성조사와 실제 계약 체결 사이에 상당한 시차가 발생해 그사이 공사비가 오르면 민간 기업은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계약법은 공공 공사 때 덤핑 입찰을 막기 위해 순공사원가(재료비·노무비·경비)의 98% 미만으로 입찰가를 써낸 기업은 탈락시키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100억원 미만 공사에 한한다. 건협 측은 “최근 공사비가 급등하고 간접자본투자로 대형 공공 공사가 늘고 있는 만큼 이 규정을 300억원 미만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공사비 문제보다 건설사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대형 펀드 등을 조성해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